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초기 대표작. 나보코프에게 확고한 작가적 명성을 안겨준 소설 『절망』은 그가 쓴 러시아어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베를린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절 발표한 작품으로 1931년 독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건을 단초로 집필했다. 주인공은 자신의 치밀한 살인 계획을 ‘예술 작품’으로 여기며 살인의 과정을 기록하는데, 작가는 자칫 진부한 범죄 이야기를 풍부한 문학적 장치가 수반된 긴장감 넘치는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의 틀 내에서 후에 『롤리타』에 등장하는 천재와 악, 진정한 재능과 거짓 재능, 죄와 벌 등 문학의 영원한 주제들을 독창적으로 풀어낸다.
소설 『절망』은 참회를 거부하는 살인자의 고백록이다. 주인공 게르만은 자신의 치밀한 살인 계획을 ‘예술 작품’으로 여기며 자신의 천재성을 세상에 보여주려고 살인의 과정을 기록한다. 독자는 자신을 완벽한 예술가로 간주하는 주인공 게르만과, 나르시시즘에 빠진 편집광 게르만의 정체를 암시하는 숨은 작가 나보코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실을 볼 것을 요구받는다. 나보코프는 이렇게 독자들과 문학적 유희를 벌이며 작가와 주인공 사이에서 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독자를 조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