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태평양 전쟁 때 군속으로 채용된 최영우가 남방에서 포로 감시원 있었던 5년의 기록은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군인도 아니고 징용도 아닌 군속으로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활용된 최영우는 전쟁이 끝난 후 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형 생활을 마친후 귀국했다. 그가 겪은 포로 감시원 생활, 근무했던 인도네시아에서의 현지 여인과 사랑,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피앙 형무소에서의 불안과 고독을 통해 식민지 청년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