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알게 된 작가, 아니 에르노.
<부끄러움>과 <단순한 열정>을 거치면서, 어렴풋하던 그녀의 근본에 닿게 해 준 작품이 <빈 옷장>인 거 같다.
불법 낙태수술을 받고 기숙사에서 수술의 여진을 기다리며, 자신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이런 결과가 자신의 출신, 성정 속에 배태된 것이 아닌가 차갑게 말한다.
누추한 서민 구역의 식료품점 겸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의 외동딸. 어린 시절은 달콤한 먹을 것들 사이를 누비며, 비슷비슷한 부류의 친구들과 가게에서 보는 거칠고 무교양하고 변태스러운 취객들의 훙내를 내며 논다. 문제는 부모의 배려로 사립학교에 들어가면서이다. 사립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환경을 엿보면서 자신의 부모, 가게에 드나드는 손님과 이웃이 얼마나 천박하고 추한지 자각하게 된다. 두 세계의 단절은 자아 정체성까지 뒤흔들며,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양가 감정 속에 괴로워 한다. 오직 공부로 두각을 나타내는 방법 하나로 그 간극을 채우려 하지만, 그조차도 어렵다.
중간중간, 욕설을 통해 드러내는 자기혐오, 그러나 그녀의 원치 않는 임신은 자기가 가닿을 수 없는 계급의 남자의 무책임함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기 가게에 널부러져 있던 남자들과 닮았다는 진술에서, 희망을 엿본다.